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빅토리아 여왕 (문단 편집) === 즉위 배경 === 빅토리아는 [[조지 3세]]의 4남인 [[에드워드 어거스터스|켄트와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]] 왕자의 딸로,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왕위에 오르기 힘든 입장이었으나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발생해 즉위가 가능했다. 빅토리아의 할아버지 조지 3세는 9남 6녀를 두었는데, 당시 왕세자였던 장남 [[조지 4세]]의 외동딸이자 후계자인 [[샬럿 어거스타|샬럿 공주]]가 아이를 낳다가 요절했다. 게다가 당시 조지 4세의 결혼 생활은 이미 파탄 나 있었기 때문에 조지 4세의 직계로는 다시 후계자를 보는 것이 불가능했다. 상황이 이리 되자 조지 3세의 아들들 중 2남 요크와 올버니의 공작 프레더릭, 3남 클래런스 공작 [[윌리엄 4세|윌리엄]], 4남 [[에드워드 어거스터스|켄트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]], 5남 컴벌랜드 공작 어니스트, 6남 서식스 공작 어거스터스[* 1794년에 태어난 아들, 1801년에 태어난 딸이 있었으나 모두 서자였다.], 7남 [[아돌푸스 프레드릭|케임브리지 공작 아돌푸스]] 이 5명의 아들에게 장차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를 낳을 의무가 주어지게 되었다.[* 이 중 2남 프레더릭 왕자는 자식 없이 큰형보다 먼저 사망하면서 제외되었다.] 3남 [[윌리엄 4세|윌리엄]]은 자식이 모두 11명이나 있었으나 [[작센마이닝겐의 아델하이트|아델라이드 왕비]] 사이에서 둔 적자녀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자[* 이 서자의 후손 중 1명이 [[데이비드 캐머런]]이다.]였고, 적자였던 자녀들마저 모두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다. 이러한 상황에서 4남 에드워드가 1819년에 [[외동딸]] 빅토리아를 얻었다. 그러나 에드워드는 빅토리아가 태어난 지 1년 만인 1820년에 사망했다. 이후 왕위는 3남인 [[윌리엄 4세]]가 물려받았으며, 빅토리아는 차기 왕위 계승 1순위가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